정말이지 지긋지긋하게 덥다. 올 여름, 안 더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유독 더위에 약하다. 사무실 책상 위의 미니 선풍기는 봄부터 가을까지 하루 종일 돌아가고, 남들은 조금은 춥다고 할 정도의 에어컨 바람을 맞아야 직성이 풀리고, 냉동실에 얼음이 떨어지면 초조하다.
특히 요즘엔 점심시간에 식당까지 걷는 그 짧은 거리의 땡볕이 싫어 미리 아침에 사온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아졌는데, 아직 퇴근시간이 꽤나 남은 오후, 서서히 몰려오는 허기에 그 동안 먹어봤던 세계 각국의 여름 간식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부드럽고 달콤한, 한 입 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이탈리아의 대표 디저트 젤라또는 일 년 내내 나의 사랑을 받는 간식이다. 작년 토스카나&돌로미테 인솔을 가서 손님들과 함께 산지미냐노의 명소인 젤라또 챔피언의 가게에 들어간 순간, 진심으로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은 과장이 아니었다.
자유시간을 이용해 그날 하루에만 5개의 젤라또를 먹은 얘길 하니 이탈리아인 기사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그리스 출장을 가서 메테오라의 거점도시 칼람바카 마을을 자유롭게 돌아보던 중 먹었던 꿀을 잔뜩 뿌린 얼린 요거트 역시 간절히 생각난다. 한국에서 파는 요거트 맛 아이스크림에 비할 수 없었던 본토의 깊고 진한 맛!
가족끼리 갔었던 대만 여행에선 비가 오는 와중에도 줄을 서서 망고빙수를 포장해오느라 아버지의 핀잔을 들었지만, 곱게 갈린 노란 얼음과 새콤달콤한 망고 과육, 부드러운 우유푸딩이 어우러진 빙수 한 입을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그 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식 곡물 빙수인 ‘쩨’,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싱가폴의 빙수인 ‘아이스까창’과 차가운 코코넛 밀크 ‘첸돌’은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열대과일주스와 함께 동남아 여행 내내 나의 동반자였다.
몇 년 전, 살면서 내가 보낸 가장 더운 여름을 선사해줬던 스페인의 간식을 떠올려보자.
한 그릇 먹으면 잃었던 입맛이 돌아왔던 차가운 토마토 수프 ‘가스파쵸’와, 여러 가지 과일을 숭덩숭덩 썰어 넣은 달달한 와인음료 ‘샹그리아’, 탄산수에 드라이한 레드와인을 붓고 얼음을 띄워 먹는 ‘띤또 데 베라노’는 이젠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발렌시아 지방의 대표적 여름 음료 ‘오르차타’는 본토가 아니고서야 만나기 힘들다.
‘추파’라고 불리는 작은 덩이뿌리를 불렸다가 물과 함께 갈아 만든 이 뽀얀 음료는 아몬드와 코코넛 향이 감도며 고소하고 쌉쌀하며 달콤해 먹어보지 않으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끝날 줄 모르는 이 더위에, 살얼음이 낀 오르차타를 생각하니, 조만간 가게 될 스페인 인솔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행복한 상상의 나래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마시던 커피는 잔뜩 들어있던 얼음이 녹아 밍밍해졌고 내일도 폭염이라는 뉴스만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지치는 이 여름, 시원한 팥빙수라도 한 그릇 먹고 힘을 내야겠다. 손님들이 소식지를 받아볼 9월 초엔 제발 이 더위가 끝나있길!
[임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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