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6. 12. 26. 06:00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을 텐데 왜 루마니아에 여행을 오신 거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루마니아에 도착하자마자 버스 안에서 내가 꺼낸 첫마디였다. 내 뜬금없는 질문에 우리 일행들은 무척이나 의아해 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대부분 알고 있다시피 루마니아는 북쪽의 독특한 목조교회들과 프레스코화 수도원들을 제외하면 강한 인상을 받을 만큼 화려한 여행지는 아니다.

 

유럽의 변방에 속하다보니 딱히 내세울 만한 유적지도 없거니와 자연 풍광 또한 크게 자랑할 만한 곳이 아니다. 더군다나 휴양의 개념으로 보자면 루마니아는 정말 아니다. 그런데 왜, 무엇을 목적으로 이 여행에 신청했는지 궁금했던 차였다.



 




사실 루마니아는 여행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 반면에 시냇물 흘러가듯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사색적인 여행지라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사색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에 그동안 루마니아 여행을 굳이 적극적으로 추천하지 않았다. 그저 여행계획서를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기다려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벌써 두 번째 팀이 루마니아를 찾은 것이다.

 

루마니아 여행은 예상대로 크게 강한 인상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작은 도시들은 서유럽의 도시들에 비해 다소 초라했고 가을이 깊어가는 전원의 풍경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줬지만 흥분을 일으킬 만큼 화려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루마니아 여행은 끝이 났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어느 날 문득 루마니아를 회상해보면 왠지 점점 더 좋았던 순간들로 되살아날 것이며, 막연하게 이곳에서 만난 장면들이 그리워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면서 마지막으로 드린 말씀이다. 그렇다. 루마니아는 그런 곳이다. 그곳에 있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할수록 그리워지는 그런 곳이다.

 

때로는 정치, 경제, , 국제정세, 철학 등등을 소재로 토론을 벌이는 일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지겨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재개그라도 좋으니 아무 생각 없이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유쾌한 술자리가 편안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여서 화려한 경치
, 역사성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유적지 답사를 거듭하다보면 간혹 피로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중요한 유적지에 왔으니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유명한 관광지이니 최대한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중압감이라고나 할까?

 

이럴 때는 그냥 편하게 현지인들의 일상을 훔쳐보며 방관자의 입장에서 기웃거리다가 때론 공감하고 때론 무심히 흘려보내는 그런 여행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라오스나 루마니아 여행이 그런 여행이다.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들을 둘러본 후 북쪽의 마라무레슈 지역으로 이동했다.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누렇게 변해가는 시골의 벌판은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꽃 한 다발을 손에 들고 영감님의 무덤을 찾아 목조교회로 향하는 할머니의 미소를 만났다. 잔뜩 짐이 실린 마차를 타고 여유로운 걸음을 옮기는 농부들도 만났고 양지바른 문 앞에 나와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노인들의 정감어린 눈빛도 마주쳤다.

 

갑자기 들이닥친 20명의 이방인에 어찌할 줄 몰라 부산을 떠는 동네 카페 주인아주머니의 호들갑도 사랑스러웠다.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벽난로의 연기가 정겹고 어미닭을 졸졸 쫒아 다니는 앞마당의 병아리들은 느슨하게 흘러가는 시간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들아니 회색빛 도시에 갇혀 살면서 항상 그리워했던 장면들이다. 루마니아는 그런 곳이다.

 

언제 다시 새로운 여행팀이 구성되어 루마니아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굳이 큰 기대를 갖고 루마니아를 다시 갈 날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루마니아 여행 기회가 다시 온다면 언제든 짐을 꾸려 따라나서고 싶다.

 

만나봐야 별 의미 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이 뻔하지만 부르면 무작정 달려 나가게 되는 오래된 친구들처럼 루마니아도 그렇게 또 만나고 싶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