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7. 4. 10. 06:00

 


우리 가족은 국내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 시간이 될 때마다 서울 근교라도 훌쩍 떠난다. 그러다가 작년 초에는 가족이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동생이 유학중인 북경이다.

 

중국어를 잘하는 동생 덕분에 걱정 없이 자유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악명 높은 북경의 스모그가 우리를 붙잡았다. 3m 앞의 사물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독했다. 결국 금쪽같은 시간인 이틀이 숙소 밖으로 나와 보지도 못한 채 그냥 지나갔다. 여행일정 담당인 나에겐 이틀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저번 주에는 휴가를 내고 취업과 졸업을 자축하며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첫 일정은 청평 얼음꽃 축제. 나름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얼음낚시터에 도착한 것은 폐장 1시간 30분 전이었다. 시간이 없었지만 각자 얼음 구멍 하나씩 차지하고, 플라스틱 낚싯대로 낚시를 시작했다. 얼음구멍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물 밑을 보면 잘 잡힌다는 팁을 듣고, 꽁꽁 얼어버린 호수와 한 몸이 된 것 마냥 딱 달라붙어서 낚시에 열중했다.

 

누운 지 몇 분 지나자 얼음구멍 안으로 팔뚝만한 송어들이 헤엄쳐 다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미 배가 불렀는지 송어들은 유유히 헤엄치다 미끼가 보이면 스윽 피해가며 전혀 입질을 하지 않았다.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얼음구멍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아빠도 결국 혀를 끌끌 차며 이건 훌치기로도 잡을 수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결국 우리가족은 폐장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짜증도 나고, 괜한 돈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그렇게 체념하며 우리 가족은 낚시터를 나섰다.

 

여행에서는 이처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들이 은근히 많다. 날이 좋지 않아 목적지 바로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하기도 한다. 교통편의 예기치 못한 지연이나 결항으로 하루 일정이 꼬이는 건 다반사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짜증 혹은 체념도 어쩌면 여행의 일부이다. 하지만 유독 여행에서 더 자주 생기는 이러한 순간들을 여행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즐기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여행 베테랑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막 여행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나는 왕초보이다. 반면에 사장님은 모든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 분들의 어떠한 반응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경지에 도달하신 것 같다. 언젠간 나도 여행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베테랑이 되는 날이 오겠지? [은보배]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