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7. 5. 15. 06:30

 

 

여행을 업으로 삼은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왔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결코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다. 러시아 여행에서 만난 한 의사선생님이다. 그 분은 긴 이동시간에도 버스 안에서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연신 나지막한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저 하늘, 저 구름 너무 아름다워.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 좀 봐, 너무 예쁘지 않아?’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 싶어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그저 소소하고 평범한 풍경들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한 듯한 그 분의 감탄사는 계속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분은 이미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다
. 이제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일만 남은 상태였으니 여행 중 만나는 모든 것들이 어찌 소중하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들이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생애 마지막으로 보는 것들이다. 항상 좋은 곳을 보면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오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늘 그뿐이니 대개는 다시 보지 못할 것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곳을 수없이 방문하는 내게도 어쩌면 생애 마지막 방문일지도 모를 순간이 찾아왔다. 지난달에 찾아갔던 안데스가 그렇다. 5번째였다. 내심 마지막 안데스 여행이라고 결심하고 떠난 터였다. 함께 했던 일행들은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그리웠던 남미 안데스와 재회했다.

 


 




온통 순백색의 우유니 사막을 달리면서
, 그리고 지독한 고독감을 극단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있는 알티플라노 고원을 달리면서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잘 있으라고 인사를 건넸다. 확실히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들이라는 생각은 안데스의 모든 것에 새삼 애틋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다시는 못 볼 곳이라는 생각에 순간순간 감정이 복받치기도 했다. 심지어는 안데스의 하늘과 바람과 벌거벗은 산들에게 그동안 내 마음을 위로해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아껴가며 이별의식을 치렀다. 안데스도 이를 알았는지 나를 잡아매려는 듯 전에 없던 고산병으로 나를 힘들게 했다.

 

남미 안데스는 앞으로도 영원히 같은 자리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은 내 후배들에 의해 테마세이투어의 남미 안데스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니다. 내 안데스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생애 마지막 여행이라면 의미 없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여행 중 조금은 따분하거나 시큰둥한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더는 못 볼 장면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