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7. 6. 12. 06:30

 

 

나는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퇴근한다. 하지만 항상 만원이다. 이미 가득 찬 지하철 안으로 줄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다 들어가는 것은 매일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출퇴근 지옥철을 타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5개월간 매일 되풀이되면서 점점 지쳐갔다. 제일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집을 일찍 나서는 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자전거였다. 성북구 길음동에 있는 집에서 회사가 있는 경복궁역 근처까지는 지도상으로 8.75km. 자전거 출퇴근이 아예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도검색을 해보니 약 32분이 걸린다고 나왔다. 오차를 생각하더라도 40분 정도면 될 것 같아 용감하게 자전거를 구입했다.

 

구매 이틀 만에 드디어 사무실로 배송 완료! 남자 동기의 도움을 받아 조립을 완성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퇴근길에 나섰다.


 

 

 



조심조심. 첫 날이다 보니 틈틈이 지도를 확인하며 잔뜩 긴장한 채로 달렸다. 중간에 헷갈려서 종로 3가까지 갔다가 다시 안국역으로 돌아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55분 만에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오로지 안전에만 집중하며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보행자일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자전거 도로가 이곳저곳에 꽤나 많이 보였다. 특히 경복궁 앞에 자전거 도로가 시원시원하게 뚫려있음에 놀랐다. 차도만큼이나 넓은 자전거도로 덕분에 차가 제일 많은 이 구간이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인도와의 구분이 모호한 자전거 도로에서는 정반대였다. 경계선 구분 없이 걸어 다니는 보행자들과 불법 주차 차량을 피해 달리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또한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몰랐던 길의 경사도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언뜻 보기에 평지인 곳도 자전거로 올라가면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내리막이 있는 길이면 힘들이지 않고 속도감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아빠의 말을 빌리면 눈물 젖은 미아리 고개가 출퇴근길 중 최고난이도의 코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익숙해져 단숨에 치고 올라간 후 정상에서 뿌듯함을 즐기게 되었다.

 

아마 자전거로 출퇴근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서울 도심 한가운데의 자전거 도로를 달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과 상쾌함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체력이 좋아지는 효과까지 얻게 되었다.

 

이제 자전거 출퇴근은 일상에서 즐기는 짧은 여행이 됐다. 매일 떠나는 여행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오늘 저녁도 힘은 들겠지만 나를 즐겁게 집까지 데려다줄 자전거가 사무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은보배]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