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7. 7. 3. 06:00

 


유럽은 버스 기사의 휴식시간에 대해 매우 엄격한 법규를 가지고 있다
. 일일 운행시간에 대한 제한은 물론이고 운행 중 휴식 시간, 주당 휴무일까지 버스 안에 설치되어 있는 타코그래프로 하나하나 기록하여 관리한다. 조금이라도 위반사항이 있을시 무거운 페널티가 뒤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스페인/포르투갈 인솔 중 포르투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스페인의 세비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리스본에서 세비야까지 순수 이동시간은 약 4시간 30분 정도이고 이처럼 장거리 운전을 할 때에는 법규상 반드시 45분의 휴식시간을 가져야했다.

 

그런데 세비야 진입을 앞두고 갑자기 쭉 한산하던 도로가 점점 주차장이 되기 시작했다. 꽃 축제기간을 맞은 세비야를 즐기기 위해 몰려든 인파 때문이었다. 그거까지 감안해서 일찍 출발했지만 차가 막혀도 너무 막혔다. 이대로라면 점심 예약 시간에 늦는 것은 물론이고 세비야 대성당 입장 마감시간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세비야에서 만나기로 한 스페인 가이드와 미친 듯이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지켜보는데 길이 조금씩 뚫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운전기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저기, 미안한데 타코가 나 이제 쉬어야 한 대.” 그가 손끝으로 가리킨 곳에는 타코그래프가 맹렬하게 PAUSE!를 외치고 있었다.

 

맙소사! 이미 오는 길에 45분의 휴식을 취했는데 운전시간이 예상치 않게 길어지면서 또 한 번 휴식을 취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식당까지 단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어쩌지? 밥을 먹으면 세비야 대성당을 못 볼 거 같은데. 하지만 그렇다고 점심을 아예 건너뛰기에는 초보인솔자의 배포가 그리 크지 못했던 탓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일찍 출발하느라 손님들이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상황이었다.

 

짧은 시간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스페인의 중요일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세비야 대성당으로 차츰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비록 한 끼를 굶더라도 이 성당을 제대로, 충분히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손님들께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랬더니 너무 감사하게도 모두 밥보다는 일정이 중요하지!”라며 흔쾌히 상황을 이해해주셨다. 그리하여 급하게 산 피자 한 조각으로 겨우 허기만 좀 달래고는 바로 세비야의 꽃인 대성당을 보러 떠날 수 있었다. 칼 같아도 너무 칼 같은 유럽의 법규 때문에 생긴, 살 떨리는 에피소드를 남기며 말이다.

 

당시에는 10분만 더 가면 되는데 기어이 멈추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타코그래프가 정말 눈물 나게 야속했다. 하지만 간간히 뉴스에서 보던 졸음운전으로 인한 대형버스 사고들을 떠올리니 그런 엄격한 법규가 결국 버스에 탑승한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속하긴 했지만 우리도 본받았으면 하는 좋은 법규인 것 같다는 결론과 함께 이 자리를 빌어 이 여행을 함께 해주신 분들께 그때 참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신한지]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