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7. 7. 20. 06:00

 

 

두 번째 출장으로 장장 14일의 그리스에게해 일주를 다녀왔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2주의 시간이 즐거운 추억들로 가득 찼다.

 

그리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주는 곳이다. 하얀 벽에 파란 지붕이 멋스러운 절벽 위의 집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와 짙푸른 에게해 바다. 잡지나 CF 등에서만 보았던 이미지들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산토리니에서의 저녁이었다.

 

 

 

 

 

전 날 산토리니 중턱 피라 마을에서 투어를 하며 시간을 보낸 뒤, 천혜의 화산섬을 앞에 둔 이아 마을로 향했다. 이아 마을에서는 몇 달 전부터 예약해 둔 일몰 명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을 위해 예약된 자리에 앉아 저녁을 주문하고 여유 있게 일몰을 기다리려던 찰나, 화산재가 섞인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센 지 테이블 위에 컵이 떨어져 깨지고 식탁 위의 샐러드가 날아갈 정도였다.

 

산토리니의 기막힌 일몰을 보여드리고자 공을 들여 섭외한 식당인데 날씨가 도와주질 않으니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바닷바람에 온몸을 두들겨 맞고 있노라니, 변화무쌍한 섬 날씨의 위엄을 몸으로 체험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가이드는 이런 상황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듯, 날아다니는 마카로니를 공중에서 집어 먹은 적도 있다고 말했지만 내 입안은 바짝바짝 말라갔다.

 

이미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난 우리 일행들이 식사자리가 괜한 고생처럼 느끼시진 않을까 걱정되던 찰나, 음식 서빙이 시작되었다. 식당에서 나눠준 담요를 몸에 두르고, 바람이 너무 불어 화산재를 먹는 지 스테이크를 먹는 지 신경 쓸 겨를도 없는 와중에 서로 마주보고 있자니 별안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이런 경험이 다 있나! 칭칭 감고 있던 머플러 자락이 펄럭펄럭 휘날리고, 입에서는 자꾸만 실실 웃음이 샜다. 그건 우리 일행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이미 지중해 사람들이 다 된 우리 일행들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와인 잔을 기울여 가며 식사를 끝마쳤다. 디저트로 나온 오렌지 케이크로 입가심까지 하고 다니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졌다.

 

노을 색이 아름다운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에게해와 바로 맞닿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라니. 다시는 없을 경험이라며 웃어 보이는 일행들의 모습이 내게는 일몰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그 날 화산재를 실컷 삼켰지만, 화산재는 유해한 먼지와는 달라 다행히 올리브유 두 모금이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간다고 한다. 나에겐 힘겨울 때마다 손님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마음과 미소가 내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 내려주는 올리브유 역할을 했다. [최예솔]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