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7. 8. 29. 06:00

 

어린 시절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그 당시 일주일에 한번 씩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또 혼자 길을 나서야만 했다.

 

같은 길임에도 어린 나의 눈에는 너무나도 달랐다. 부모님을 만나러 집으로 가는 길은 맑고 밝고 따뜻한 길이었고, 친척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는 길은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눈물 때문인지 희뿌연 길로 기억된다.

 

 

 

 

 

북쪽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에서는 모든 길이 맑은 길이었다. 일정의 절반이 비가 오는 흐린 날이었지만, 그래서 안개가 자욱하게 껴 바깥 경치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날이 많았지만 북쪽으로 가는 길은 우리에겐 맑은 길이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오른 고원의 길 끝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나고, 양떼를 만나고 순록을 만나는 그 길 자체가 감동이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길은 목적지를 가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짧은 길이 좋았고 편한 길이 좋았다. 실은 버스 이동하는 내내 계속 시계만 쳐다보고 언제 도착할지, 입장시간에 늦지는 않을지 체크하기에만 바빠서 길 위에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달랐다. 길 위에 있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송네피엘레 풍광국도에서 들러야 할 디투어 작품을 놓쳐 어디서 버스를 돌려야하나 고심하며 당황하던 순간, 갑자기 나타난 설산에 닿을 듯 쭉 뻗은 길은 나의 온갖 근심걱정을 잊게 해주었다.

 

 

 

 

이어서 만난 감레 스트뤼네피엘스베겐에서는 6월말임에도 불구하고 차보다 더 높은 설벽(雪壁)에 버스를 보내버리고 무작정 그 길을 따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트롤 요정들이 왕성하게 활개를 치는 비가 오던 날, 리듬체조 리본이 날아가는 듯한 모양의 험난한 산악도로인 트롤스티겐에서는 정말 트롤이 나올 것만 같았다.

 

벅찬 감동의 절정은 바로 노르드캅 가는 길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경치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드넓은 초원, 그리고 군데군데 나타나는 맑은 호수, 그 사이로 이어진 한줄기 길. 그냥 하염없이 걷고 싶은 그런 길이 계속 이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길의 끝에는 71°1021노르드캅이 있었다. 막상 세상의 끝인 노르드캅에 도착했을 때는 그 과정이 너무 황홀했던지라 오히려 덤덤했다.

 

노르웨이에서는 길이 곧 여행이었다. [서경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