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7. 10. 31. 06:00

 

올해 다녀온 출장지들을 되짚어 보니 신기하게도 늘 텐트가 여행에서 공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여행 중 지쳐있을 때 근사한 호텔에서 하얗고 푹신한 침구에 파묻혀 휴식을 취하는 것도 너무나 행복한 일이지만, 텐트에서의 숙박은 약간의 불편함으로 값을 치르고 일종의 곱빼기 추억을 얻어가는 일인 것 같다.

 

그 시작은 캐나다 눈꽃열차와 오로라 여행이었다. 일정에 텐트 숙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오로라가 나타나주기를 고대하며 티피라고 부르는 텐트에서 불을 쬐면서 대기를 해야 했다. 티피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주거용 천막인 원뿔 모양의 뾰족한 텐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현상인 오로라를 본다는 것 자체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지만, 눈썹에 서리가 끼는 추위 속에서 일행들과 기다리며 웃음꽃을 피우던 그 티피 안의 따뜻한 공기는 더욱 그 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배턴을 넘겨받아 다음 출장지인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아씨고원에서는 말 그대로 초원위에 캠핑용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주변에 호텔은커녕 아무런 건물도, 도로도, 사람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를 태운 지프차와 텐트만이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었다.

 

지도에서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야영을 한 거라고 콕 집기도 어려운 미지의 땅에서 그날 밤 캠프파이어의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던 시간은 똑같이 따라한다고 한들 다시는 없을 순간이었다.

 

가장 최근 다녀온 몽골도 텐트 숙박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나라다. 몽골의 텐트는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가축의 털과 두꺼운 천을 덮어 만든 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주거지인 게르를 말한다. 관광객용 게르는 생각보다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지내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체험삼아 게르에 하루 숙박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몽골여행 곳곳에 숨어있는 요소들이 게르의 기억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유목민 가족이 실제 생활하는 게르를 방문하면 환영하는 뜻에서 말의 젖을 짜서 발효시킨 술인 마유주를 대접해준다. 우리는 귀한 손님이라며 은으로 만든 커다란 사발에 대접받았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시큼한 맛과 알코올 기 때문에 맛만 살짝 보기를 원했던 몇몇 손님들과 나는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랐다.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고, 더욱 난감했던 것은 겨우겨우 한 모금 들이킬 때마다 마신 만큼 다시 채워주는 거였다. 우리는 서로 다음 타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찌나 열심히 주인아저씨의 눈을 피하며 키득거렸는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재밌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홉스골에서 벌벌 떨면서도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별을 보며 행복해 했던 일, 난로의 장작이 타는 소리와 게르 천장에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어우러져 낭만적이었던 분위기. 모두 고양이 세수 며칠로 값을 치른 것으로는 꽤나 값진 추억들이다.

 

비가 온 후 축축해진 게르에서 풍기는 젖은 양털 냄새가 가끔은 지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덧 텐트 숙박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 같다.

 

혹시나 여행지에서 텐트에서 잘 기회가 생긴다면 너무 걱정부터 하지는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텐트에서 자는 일정이 포함되면서 주변 상황들이 어떻게 예상치 못하게 전개될지, 또 거기서 어떤 우연한 풍경을 보고 행복을 누리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기대 이상의 값진 경험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박미나]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