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7. 11. 23. 06:00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실 뒤편 학급문고에 꽂혀있던 책 중에 유독 여러 번 읽은 책이 있다. 남동생과 함께 가출을 감행한 클로디아의 이야기가 담긴 클로디아의 비밀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좋아했던 건 나도 가출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향한 곳이 바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기 때문이다.

 

클로디아와 남동생은 가출 생활동안 미술관에서 숨어 지낸다. 낮에는 미술품을 관람하며 시간을 보내고, 관람객이 모두 빠져나간 밤에는 경비원의 눈을 피해 분수대에서 목욕도 하고 유서 깊은 침대 위에서 잠도 잔다.

 

 

 

 

 

이야기의 본격적인 사건은 이 이후부터이지만 나는 그들이 미술관에서 생활하는 부분만 마르고 닳도록 읽으며 단짝 친구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살면서 아무도 없을 때 둘이서만 모나리자를 보러 가자고 약속 하면서 말이다.

 

점점 커가며 그 때 그 약속은 물론이고 책의 제목마저도 어느 순간부턴 새까맣게 잊고 지내왔다. 그런데 얼마 전 다녀온 휴가에서 어린 시절의 이 기억이 되살아나는 체험을 했다. 바로 나오시마의 베네세 뮤지엄에서였다.

 

원래 베네세 뮤지엄은 저녁 9시까지 관람이 가능하고 마지막 입장시간은 저녁 8시까지이다. 그러나 투숙객은 무려 밤 11시까지 관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늦은 저녁 나오시마에 도착해 짐을 풀고도 여유롭게 베네세 뮤지엄으로 향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 여덟시 반 무렵 도착한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작품들만이 기분 좋은 침묵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를 내기도 조심스러워지는 그 고요한 공간에서 벽과 바닥에 놓여있는 모든 작품들을 독점하는 그 기분이란!

 

 

 

 

그 순간 12살 때 좋아했던 동화책의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클로디아처럼 모두가 집에 돌아가 텅 비어있는 늦은 밤의 미술관이라니.

 

그 분위기에 한껏 취해 베네세 뮤지엄 안의 작품을 모조리 둘러보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폐장시간이 가까워져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내가 묵는 객실이 있는 파크동으로 돌아오려니 작품들과 한 건물에서 잠드는 뮤지엄동에 투숙하는 사람들이 조금 부러워지기도 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작품들과 함께 잠드는 기분은 또 어떨까. 어쩌면 클로디아처럼 미술품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신한지]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