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7. 12. 4. 06:00

 

 

난 달라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여행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입사 후 소중한 첫 휴가를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6월 초에 일찌감치 모객이 됐지만 나는 독일과 아이슬란드 출장으로 내 휴가 계획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모든 여행을 맡겼다. 친구들은 내가 여행사에 취직하자 저렴한 항공권과 많은 여행정보를 기대했지만, 나는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 사실 나는 빈틈이 여행이라 할 정도로 여행에 틈이 많았다. 비행기와 기차는 허구한 날 놓치기 일쑤였고, 발이 닿는 곳이 다음 여행지였다. 그 동네만이 가진 특징과 역사에 대한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내 친구들도 나를 닮은 것일까. 드디어 제주도로 휴가 가는 날, 친구가 시간을 잘 못 아는 바람에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여행사 인솔자로 변신했다. 당황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능수능란하게 패널티가 최소화 되는 범위에서 다음 표를 구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기록적인 폭우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물이 차올라 차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지만, 친구들은 소문난 맛 집을 찾아 무리하게 이동을 했다. 원래였다면 나도 함께 무모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집을 찾자며 친구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계획이 틀어져 시간이 생기자 원래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갤러리, 다원, 사찰 등으로 친구들을 이끈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예전 같으면 역동적인 액티비티를 하거나 술을 마시며 극적인 행복을 찾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도 깜짝 놀란 것은 일몰을 보기 위해 3시간을 한 곳에서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여행은 나도 모르게 내가 다니는 여행사와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도 회사 다니더니 정말 많이 변했다며 놀라워했다.

 

입사한 지 어언 11. 앞으로 내 여행은 또 어떻게 변해갈까. [이병철]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