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8. 2. 8. 06:00

 

 

요 근래 들어 미얀마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미얀마 내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박해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서방 세계는 일제히 미얀마 정부에 대한 비난에 나서고 있다. 특히 실질적으로 미얀마를 이끌고 있는 수치 여사의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서구는 정의의 편에 서 있고, 미얀마는 악당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얼마 전의 미얀마 여행을 통해 난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힝야족은 이슬람을 믿는 미얀마 내의 소수민족이다. 공식적으로만 135개의 부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국가이자, 다종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유독 로힝야족이 인종청소의 대상이 된 이유는 비극적인 역사가 그 배경이다.

 

로힝야족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던 19세기 후반 방글라데시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했던 게 아니다. 영국이 새롭게 식민지로 삼은 미얀마를 쉽게 지배하기 위해 이미 영국식 통치 시스템에 익숙한 로힝야족들을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미얀마인들의 토지를 빼앗아 로힝야족들에게 주었고, 로힝야족은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미얀마인들의 로힝야족에 대한 반감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문제는 2차대전 중 일본이 미얀마에 진출하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일본은 영국과 싸우기 위해 미얀마인들의 환심을 사야했고, 이를 위해 로힝야족의 땅을 빼앗아 다시 미얀마인들에게 돌려주었다. 이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에도 미얀마가 일본에 대해 큰 반감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얀마에 대한 식민지배권을 순순히 내줄리 없던 영국은 로힝야족을 동원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마침내 1942년 로힝야족이 2만 명에 달하는 미얀마인들을 대학살하면서 이 둘의 관계는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라카인 주로 강제 이주 되었고, 지금까지 지속적인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가 로힝야 무장단체의 경찰서 습격 사건을 계기로 사태가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비극을 초래한 악인은 누구란 말인가? 물론 과거의 역사가 지금 자행되는 인종청소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후손들이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태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행 중 만났던,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했던 미얀마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 역시 비난의 대상 이전에 로힝야족과 마찬가지로 냉혹한 역사의 희생자들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지금 미얀마에 대한 비난에 앞장서고 있는 영국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을 거면 그 입 다물라라고 외쳐주고 싶었다. [최예솔]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