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8. 2. 19. 06:00

 

 

나는 차를 오래 타는 걸 싫어한다. 아니, 싫어했다. 특히 인솔자의 입장에서 네다섯 시간씩 버스를 타고 달려야하는 일정이 있으면 출발 전부터 지레 걱정하기 일쑤였다.

 

차에 타고 있는 긴 시간동안 손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옆에서 자고 있는 가이드를 깨워서 여행에 관련된 뭔 얘기라도 해보라고 채근해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혼자 동동 거렸었다.

 

 

 

 

그러나 인솔 경험이 쌓여가고, 함께 여행했던 손님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러한 마음의 압박은 줄어들게 되었다. 길 위에 있는 시간 자체를 즐기고 있는 베테랑 여행자들의 모습이 점점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날, 공항에서 드렸던 여행 자료집을 읽으며 공부를 하거나, 헤드폰을 귀에 끼고 미리 준비해 온 음악을 듣거나, 창 밖에 지나가는 사소한 풍경들까지 사진을 찍거나, 그도 아니면 눈을 감고 명상 내지 주무시는 손님들을 보니 굳이 마이크를 잡고 그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졌다.

 

왠지 모를 의무감에 원고를 준비해와 몰래 힐끔거리며 읽다가, 듣고 있는 손님들의 표정까지 살피며 일희일비하던 초보 인솔자가 정말 많이 변한 것이다.

 

이제는 차에 올라타면 오늘 일정에 대한 설명, 도착지에 관련된 정보, 지난 일정 등을 말씀드린 뒤 가이드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보충 설명을 요청하거나 가이드마저 없는 여행지라면 조용히 음악을 튼다. 종종 들어오는 질문에도 대답해 드리는데, 그러다보면 어느새 정적이 흐른다.

 

예전 같으면 숨 막혔을 그 정적이 요새는 나름 반갑기까지 하다. 인솔자 입장에서 다음 일정을 체크하고 정리한 뒤 남는 그 고요한 시간에는 잠시 여행자의 시선으로 홀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장거리 이동 길에선 끝없는 올리브나무를 바라보며 교환학생 시절을 추억했고,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크로아티아의 도로나 마르세유에서 니스까지 달리던 코트다쥐르 해안 길을 달릴 땐 지난 휴가지에서 만났던 또 다른 푸른색의 바닷가를 생각했다.

 

세 번이나 인솔길에 올랐던 아이슬란드의 황량한 내륙, 하이랜드를 달릴 땐 아무것도 없는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괜히 울컥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무슨 인연으로 이곳에 와서 지금 이러고 있나.

 

이제 난 긴 이동시간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눈에 띄는 볼거리가 없어도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소소한 일상들,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어있는 아름다움을 만나며 나 자신과 조우할 수 있는 그 순간도 여행의 일부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임윤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