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8. 4. 17. 06:00

 

 

 

새해 첫 출장은 아프리카였다. 19일 동안 10번의 비행기를 타고 6개국을 방문하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지만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매 순간이 생생이 떠오를 만큼 인상적인 나날이었다.

 

무지개 너머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빅토리아 폭포의 물보라, 파란 하늘과 붉은 모래, 하얗게 말라버린 웅덩이 위에 굳건히 박혀있는 고사목의 3중주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데드플라이, 드넓은 초원 위에 드문드문 서있는 아프리카 아카시아 나무와 운이 좋아 다 만날 수 있었던 Big 5(사자, 코끼리, 버펄로, 표범, 코뿔소) 등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해보라면 한참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내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풍경은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응고롱고로 보호구역으로 이동하는 길목이었다.

 

여행 16일차, 그 유명한 세렝게티에서 생각보다 많은 동물을 보지 못해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우기가 시작된 탓에 풀이 높이 자라있어 숨어있는 동물을 보기도, 동물의 기척을 찾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풀죽어 있는 인솔자에게 지프차를 운전하던 사파리 가이드는 이 풀들을 먹으려고 남쪽에서 동물들이 올라오고 있으니 응고롱고로로 갈수록 동물이 많을 거라 위로해줬지만 그저 격려의 소리로만 받아들였다.

 

차 옆으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몇 마리와 이제는 너무나 자주 등장해 사진 찍을 의욕도 안 생기는 얼룩말들을 보며 이 비포장도로는 얼마나 더 달려야하나, 집에 갈 때가 다 돼서 그런지 피곤해 죽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가 조용히 섰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림잡아 수십만 마리는 될 법한 누 떼가 초원에 점처럼 서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그 수많은 점들이 소의 뿔, 염소의 수염, 말의 꼬리가 합쳐진 듯한 생김새를 가진 누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누라니! 차에 탄 우리 모두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사진 찍기 바빴다. 눈 닿는 모든 곳에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풀을 뜯어 먹거나, 이동하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누들의 모습은 정말 직접 보지 않고서는 상상 할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이곳에 있는 누들은 신선한 풀을 찾아 점점 세렝게티 쪽으로 올라가다 3월까지 많은 새끼들을 낳아 수를 불린 뒤, 4월이 되면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얼룩말과 톰슨가젤이 합류한 거대한 무리는 마라 강을 향해 8~9월까지 계속 북진할거고 생태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관이라는 대이동을 마친 뒤 마사이마라에 도착한다. 마사이 마라의 우기가 끝나고 먹을 풀이 없어지는 11월이 되면 그들은 다시 응고롱고로 쪽으로 내려오는 이 위대한 여정을 반복한다.

 

초원위에 무한히 존재하는 것만 같은 누 떼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그 순간, 그 어떤 희귀한 동물을 봤을 때보다 두근거렸던 그 순간이 아프리카에서 돌아 온 지 한 달이 넘은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임윤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