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8. 7. 17. 06:00

 

 

이탈리아 일주 여행의 5일째, 산 지미냐노에 도착했다. 호텔이 있는 구시가지까지 마을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야 했는데, 때마침 내린 거센 비와 하늘이 찢어져라 치는 천둥소리에 괜스레 심통이 났다.

 

마을의 중심이 되는 시스테르나 광장 바로 앞 명당자리에 떡하니 있는 호텔은 위치는 좋았지만 12세기부터 존재한 건물을 리모델링한 탓인지 인솔자 방이 있는 4층까지는 엘리베이터도 닿지 않아 비에 젖은 축축한 몰골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두 층이나 올라가야 했다.

 

 

 

 

 

이게 웬 고생인가 싶어 꿀꿀한 마음으로 방에 난 창문을 연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비가 그쳐 저 멀리 보이는 토스카나의 초록빛 구릉지가 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촉촉이 젖은 초원위에 낮게 깔린 구름과 드문드문 서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어지러웠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3년 전, 토스카나와 돌로미테 상품의 인솔길에서 봤던 바로 그 풍경, 그래 나는 이런 게 그리웠던 것이었다. 사람과 차와 먼지로 가득한, 그러나 시간과 여유는 없는 서울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친 탓인지 언제부턴가 여행길에 오르면 세련된 도시보다는 한적한 시골 풍경에 더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비단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손님들 역시 처음엔 버스도 못 올라가는 조그만 마을에 뭐 볼게 있나 싶었다가도 금세 마음을 뺏기며 여기 참 좋다가 절로 나오는 곳이 바로 산 지미냐노였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보이는 토스카나의 풍경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반들반들한 돌바닥, 하늘높이 치솟은 중세시대의 탑들, 어둠이 깔리고 관광객이 빠져나가면 조용해지는 광장 등 이 작은 마을은 비록 하룻밤이었지만 우리에게 기분 좋은 힐링을 선사해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을 하고 있는 인솔자 입장에서도 여긴 정말 좋다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행지들은 모두 유명하지 않은 작은 마을, 아니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는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 혹은 사람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오지였다.

 

저번 달에 다녀온 시칠리아에서는 그 어떤 그리스·로마 유적지보다 트라파니 해안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소박한 중세마을 에리체가 제일 기억에 남았고, 올 초에 다녀온 아프리카는 세련된 유럽풍 도시 케이프타운보다 동물들이 어슬렁거리는 초원이 훨씬 좋았다.

 

화려한 성당과 유명한 작품이 있다는 미술관보다는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은 마을의 소박한 성당과 텅 빈 아름다움이 있는 나미비아의 사막은 언젠가 개인적으로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인솔자로서 세계 곳곳을 가다보니 나도 몰랐던 내 여행 취향을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팍팍한 현실에 질려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취향이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딜 가든 남들은 잘 안가는 소도시들이 꼭 껴있거나, 오지를 가는 상품이 종종 있는 테마세이투어의 인솔자로 일하는 이상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기대로 다음 출장길을 준비해야겠다. [임윤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