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9. 1. 10. 06:00

 

 

여행지로써는 너무 좋고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지만 인솔자의 입장에서는 이제 그만 가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다. 그 중의 한 곳이 얼마 전 다녀온 그리스다.

 

2주간의 긴 여행기간에서 오는 체력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2년 전 첫 그리스 출장길에서 맞닥뜨린 갑작스런 페리 파업사태로 아테네 공항에 홀로 남겨져서 고생했던 일도 악몽 같았고, 유적보다는 자연풍광을 훨씬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은 일! 그동안 경험이 쌓인 만큼, 훨씬 노련한 모습으로 이번 손님들께도 멋진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인솔길에 올랐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다른 인솔자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페리 파업은 우리가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도 이어졌다. 이러다 자칫 하루라도 파업이 연장되면 2년 전 그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환승지인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역시 그리스와는 상성이 안 맞는 것 같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공항에 도착해 핸드폰을 열어보니 다행히 파업은 끝났다는 반가운 문자가 와있었다. 일단 첫 번째 위기상황은 넘겼으니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의 꼭대기에 고고하게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딜로스 섬의 사자상은 다시 만나서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미코노스의 하얀 건물들을 붉게 물들이던 강렬한 석양과 산토리니 절벽의 588계단을 오르던 노새 탑승 체험, 날씨 좋은 비코스 협곡에서의 래프팅은 지난 출장에선 경험할 수 없던 것이었다.

 

한 번 왔었다고 익숙해진 장소와 일정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덕분인지 걱정했던 것만큼 지치지도 않았다. 전쟁 통에 피난 가는 것 같은 혼란스런 페리 승·하선도 당황하지 않고 할 수 있었고, 다친 손님을 모시고 병원에 간 가이드의 부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해진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사소하게는 이 식당의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손님의 질문에 단번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와 본 인솔자의 장점을 마구 발휘했다. 이는 분명 손님들에게도, 가이드에게도, 그리고 인솔자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일이었으리라.

 

단지 새로운 풍경을 마주칠 때마다 남모르게 홀로 삼켰던 감탄과 기대는 사라지고, 매너리즘에 빠질까 항상 스스로를 단속해야 했기에 초행길의 인솔자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은 사라진 게 아주 조금은 아쉬웠을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봤던 곳과 처음 가본 곳 중 어디를 더 인솔로 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정말 많이 고민할 것 같다. 익숙해서 좋은 곳과 신선해서 좋은 곳, 모두 나름의 장점이 있기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지만 세 번째 그리스 출장의 기회가 온다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미 두 번이나 가봤으니, 이 아름다운 곳을 아직 안 가본 동료들한테 기꺼이 양보하고 싶다고! [임윤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