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친구들끼리 모인 송년회 자리에서 ‘할 수 있다’와 ‘없다’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유명 음료회사에서 1년 동안 스마트폰을 끊으면 10만 달러를 주는 이벤트를 연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10만 달러라는 금액에 눈이 반짝인 ‘할 수 있다’파들은 생활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의 대체재를 찾으려 머리를 싸맸고 ‘할 수 없다’파들은 사소한데까지 침투해있는 스마트폰의 편리성을 조목조목 설파하며 약을 올렸다.
여행사에 다니는 나는 일상도 일상이지만 여행지에서의 불편함부터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너네 구글맵 없이 여행할 수 있어?’하고 묻자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이제는 GPS 표시 없인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다고 하던 친구도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으로 배낭여행 하던 때가 떠올랐다.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지만 말만 스마트폰이지 정작 그 기능은 하나도 못하는 폰을 사용했던 나는 그야말로 아날로그 상태로 유럽으로 향했다.
가방에는 한국에서 정리해온 여행노트와 여행안내서가 한 짐이었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지도와 각종 안내책자를 쓸어 담는 일이었다.
그러나 긁어모은 정보는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고, 골목골목 얽혀있는 구시가지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도대체 몇 번이었는가! 꼬이고 꼬이는 일정에 하루에도 기분이 열두 번은 오락가락하는 통에 같이 간 언니랑 걸핏하면 싸우고 삐지고 난리도 아니었더랬다.
그 와중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싸운 티는 쏙 감추고 꼬박꼬박 며칠에 한번은 핸드폰으로 짧은 문자를 보내거나 사진을 넣어서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좌충우돌 다녀온 첫 배낭여행이지만 돌이켜보니 그때라도 그렇게 다녀온 게 너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된 지금은 길을 잃는 일도, 우왕좌왕 헤매는 일도 잘 없게 되었지만 어쩐지 그 사라져버린 불편함과 함께 여행에서의 낭만도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길을 잃었기 때문에 우연히 만날 수 있던 풍경도 사람도 모두 사라진 채 여행이 마냥 스마트해지기만 하는 게 과연 좋은 걸까?
게다가 연락두절 될 걱정 없이 24시간 한국과 연결되어 있는 건 편리하기도,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여행에 오롯이 집중하는 걸 방해하는 것만 같다.
때문에 친구들과 나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다가오는 2019년, 스마트폰 없이 조금은 스마트하지 않은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 것이다. 10만 달러의 상금은커녕 숱한 불편과 갈등이 벌써부터 불 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분명 그에 못지않은 즐거운 우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는다. [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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