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9. 3. 27. 16:50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첫사랑의 그가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첫사랑의 시절엔 솔직하지만 서투른 청춘이 있었고 지독할 만큼 순수한 내가 있었다.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를 사랑한 나의 마음을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터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루함을 달래고자 영화 <변산>을 보던 중 이 대목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공감이 가는 멋진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에 있어서 나의 첫사랑은 인도였다. 동료들과 배낭여행을 갔다가 바라나시에 흠뻑 빠지게 되었고, 귀국 후 곧바로 혼자 다시 찾아갔을 정도로 강렬했던 첫사랑이었다. 그 때만 해도 서투른 청춘이었기에 바라나시의 거리만큼이나 내 머릿속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웠었다. 갠지스 강가를 배회하며 며칠을 방황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인도사랑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인도라는 이름만 들어도 왠지 애틋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왜 인도를 그리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 그럴 때면 항상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왠지 미진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 <변산>을 통해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갠지스 강가를 배회하던 그 시절엔 솔직하지만 서투른 청춘이 있었고 지독할 만큼 순수한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도를 사랑한 것이 아니고 인도를 사랑한 나의 마음을 사랑한 것이었다.

 

여행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인도 배낭여행 때문이었으며, 여행업을 시작한 후 첫 여행팀도 인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탈도 많고 문제도 많았던 첫 여행이었다. 의욕이 넘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경험부족이었을까?

 

인도 배낭여행에서의 내 경험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모두가 공감하게 하고 싶었다. 길거리 과일주스를 권하고 트럭운전수 휴게소에서 가장 서민적인 음식을 식사로 제공하여 손으로 드시도록 강권하기도 했다. 3일 연속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을 방문하고, 새벽잠을 깨워 닥신 칼리 사원으로 달려가 염소, 양, 닭의 목을 쳐 피를 뿌리는 끔찍한 장면을 참관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집단 식중독에 감기몸살까지 얻어 참으로 고단한 여행길로 만들고 말았다. 자칫 악연일 수도 있었던 그분들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어 이후 세상 많은 곳을 함께 여행했다. 돌아보면 그분들은 다른 의미의 내 첫사랑이었다.

그런데 19년이 지난 요즘 그분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세월이 흘렀음이다. 지난 여행들은 어느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에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 분들이, 그리고 그분들과의 첫 인도여행이 그립다. 어설프고 서툴렀으며 세련되지도 못했지만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던 내가 있었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첫사랑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사진첩을 들춰보자니 괜한 그리움에 조금은 슬퍼진다. 그래도 그리움 속에서나마 그 시절을 만날 수 있다면 오늘은 조금 슬퍼도 되겠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