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9. 4. 19. 06:00

 

지난 1월 네팔 출장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은 물론 멋진 히말리야뷰였지만 어릴 때 쿠마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 때문인지 카트만두 쿠마리 여신관 방문 역시 내 흥미와 궁금증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네팔의 쿠마리는 힌두교의 탈레주라는 여신이 어린소녀의 몸을 빌려 환생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한다. 이 소녀는 석가모니가 속한 석가족 출신이어야만 하며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통과해야만 쿠마리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검은 눈동자와 머리카락, 가지런한 치아, 흠 없는 피부 등 까다로운 조건들을 통과한 쿠마리는 되고 나서도 자격을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절대로 피를 흘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않지만 출입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업히거나 가마에 타서만 가능하고 초경의 시작은 곧 쿠마리 생활의 끝을 의미한다.

 

지난 1월 여행팀은 여신 알현을 기다리면서 가이드에게 쿠마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린소녀가 정말 여신의 현신으로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우리 일행들에게 가이드는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 쿠마리가 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쿠마리들은 쿠마리가 되기 위한 테스트를 거칠 때 여러 벌의 똑같은 옷을 두고 바로 직전 쿠마리가 입었던 옷을 골라내야하는데 그 역시도 막힘없이 골라낸다고 했다.

 

오~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 우리는 쿠마리가 곧 나온다는 소식에 핸드폰을 전부 가방에 넣고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다) 고개를 들어 위층 창문으로 쿠마리 여신이 얼굴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창밖으로 나온 여신님은 정말이지…, 너무도 애기였다. 들어보니 이제 고작 다섯 살 정도의 나이라고 했다.

 

함부로 웃어서도 울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난 쿠마리는 잠깐 얼굴을 보여준 뒤 몸을 홱 돌려 들어갔는데 그 몸짓마저도 너무 애기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리고 웃음이 가라앉은 뒤에는 뭔지 모를 짠한 감정이 올라왔다. 친구도 없이 마음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무거운 장신구를 얹고 여신관안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정말 여신님이기 때문에 괜찮은 걸까….

 

그래도 예전 쿠마리와 달리 요새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 쿠마리 은퇴 후 결혼도 할 수 있고, 국가에서 교육도 시켜주고 연금도 줘서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신관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함부로 동정할 수도 재단할 수도 없는 그들의 삶과 문화임을 머리로는 납득을 해도 통통한 두 뺨과 자그마한 체구가 자꾸 눈에 밟혔다. 복을 빌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찾는 쿠마리 여신관이지만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작은 여신님의 삶이 언제까지고 평탄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신한지]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