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9. 4. 23. 06:00

 

 

인솔 경력이 쌓여갈수록 날씨에 집착하게 된다. 소중한 돈과 시간을 들인 여행, 언제 또 오게 될지 모르는 여행, 날씨가 좋아야하는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다. 내 여행이라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는데 손님들과의 여행은 아무래도 다르다.

 

특히나 메인 일정의 날씨는 중요하다. 그리고 이번 요르단 여행의 메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페트라였다. 게다가 페트라 구석구석 보기가 테마인지라 꽤 난이도 높은 트레킹 일정도 2번이나 있다. 날씨는 무조건 좋아야했다. 여행 출발 전부터 날씨 어플을 끼고 살았다. 하필이면 페트라 일정 날에 눈과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눈이라니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페트라에 입성하는 날 하늘은 온통 누런색이었다. 비는 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시선은 오로지 창밖에 꽂혀있었다. 커다란 바위 절벽 사이로 들어가는 입구까지는 그다지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알카즈네를 맞이하고 허허벌판 광야로 들어서자 세찬 모래바람이 우리를 공격했다. 공격 말고는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우리를 밀어붙였다. 결국 오늘 해야 할 일정을 시작조차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참담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하는데 급기야 진눈깨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래로 범벅이었던 옷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아, 그래도 빨리 후퇴해서 호텔로 온 것이 다행이었나, 이제는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신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었다는 혹독한 광야의 자연이 이런 것이었을까? 머릿속 가득한 모래를 털어내며, 페트라 여행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내일 할 수 있는 건 다 하리라 다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페트라로 향했다. 기온은 거의 한겨울,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알 데이르 트레킹이 마무리되었다. 사실 너무 추워서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알 데이르 앞이었던 것 같다.

 

 

 

점심식사 후 심기일전하여 어제 시도하지 못했던 알굽타 트레킹에 나섰다. 오전 트레킹보다는 난이도가 좀 있는 편이었지만 잠시 파란 하늘도 맛보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알카즈네가 생각보다 훨씬 멋있었고 또한 낙오자 없이 모두들 건강하게 하산하여 다행이었다. 모두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모든 것을 쏟아 부었기에 마음은 가벼웠다.

 

이틀에 걸쳐 할 일정을 하루에 다 해버렸으니 내 욕심에 손님들을 너무 힘들게 한 것이 아닌가, 무리가 되었을 법도 한데 모두들 웃는 얼굴로 서로서로를 격려해주셨다.

 

손님들은 그래도 날씨가 차서 2번의 트레킹을 하루에 다 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돌아온 지 한참인데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또한 거센 비로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카즈베기산, 비 내리던 모뉴먼트 밸리, 일정 내내 비가 왔었던 무이산 토루, 아이슬란드 등 비에 얽힌 슬픈 출장의 기억과 그때의 손님들의 황망한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라서 한동안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간신히 회복될 무렵 요르단 2차 팀으로 간 인솔자가 보내온 파란 하늘의 페트라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또 마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삶은 정말 시련의 연속임에 틀림없다. [이은정]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