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9. 5. 7. 02:57

 

주말에 한강 둔치를 지나다 노랗게 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을 봤다. 고향인 남쪽엔 벌써부터 꽃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번 봄은 올해 두 번째다. 첫 봄은 중국의 숨겨진 명소, 귀주성(貴州省)에서 한 달 이르게 만나고 왔다.

 

이제 막 구정을 마치고 봄맞이를 준비하는 귀주성은 여행하기에 아주 알맞은 시기였다. 관광지는 한가로웠고, 논밭을 일구는 손길은 분주했다. 그러다보니 구경을 다닌 곳들은 전세를 낸 것처럼 여유로워 좋았고, 음식은 봄 첫 나물과 철 맞은 유채줄기가 밥상마다 올라 좋았다.

 

 

 

운이 좋게 대부분 날씨도 좋았다. 귀주성의 주도인 귀양(贵阳)은 이름 그대로 해가 귀한 지역이지만, 걱정과 달리 계속 맑았다. 올해 운을 몰아 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귀주여행은 여러 가지를 만족시키는 여행이었다. 대개 귀주성 여행은 천혜의 자연과 소수민족을 보기 위함이라 한다. 말처럼 귀주의 자연은 수묵화 같았다. 험준한 산악지대가 대부분인지라 자연 관광도 거의 폭포와 강, 산봉우리, 협곡과 같은 산수를 보는 것으로 이뤄졌다.

 

그 중 개인적으로 최고는 직금동(织金洞) 동굴이었다. 깊이 약 10km에 달하는 직금동은 규모도 규모지만, 내부를 장식한 각종 종유석과 석순이 압권이었다. 은은하게 조명을 받은 기기묘묘한 암석들을 보고 있으면 동굴을 거니는 내내 여러 가지 형상을 찾아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이외에도 아시아 최대 폭포인 황과수 폭포,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흉터’라 불리는 마령하 협곡 등 풍경 하나하나가 하이라이트 같았다.

 

 

 

귀주는 사람 구경이 특히 흥미로웠다. 산세가 험하다보니 오랜 세월 변방이자 오지였다. 그러다보니 소수민족이 많고, 그들의 문화와 전통 생활방식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게다가, 산악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성해 놓은 계단식 논밭들은 인간과 자연의 아슬아슬한 공존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적이기도 했다.

 

일정 중에는 조흥, 량덕 등 고진들을 방문하여 묘족, 부이족, 동족의 민속공연도 보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환경을 접해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중국 역사만큼 긴 귀주의 오래된 이야기들은 여행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고, 먹거리는 매콤해서 우리 입에 잘 맞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걷는 양이 제법 많고, 우리의 다른 여행에 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구간이 길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주로 보는 것이 거대한 산수이고, 중국의 한 주(州)라지만 웬만한 나라보다 큰지라 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이 귀주성을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문화를 간직한 여행지로 남아 있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귀주성은 용척제전(龙脊梯田)의 다랭이 논과 만봉림(万峰林)의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 가을에 다시 떠난다. 이제 막 봄을 맞이했지만, 귀주성의 가을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병철]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