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9. 8. 1. 06:30

 

 

1945년 8월 6일, ‘리틀 보이(Little Boy)’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을 싣고 ‘에놀라 게이(Enola Gay)’라는 이름을 가진 B-29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향해 날아올랐다. 리틀 보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무색하게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며 순식간에 히로시마의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버린 핵폭탄은 3일 후, 나가사키에도 똑같이 투하된다.

 

곧 또 다른 핵폭탄이 도쿄에도 떨어질 것이라는 루머가 돌자 결국 8월 15일에 일본은 항복을 하게 된다. 이로써 길고 끔찍했던 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되고, 우리에게 이날은 광복절이라는 중요한 역사의 날로 남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에메랄드 빛 바다로 각광받는 휴양지 사이판. 위의 역사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지만 실은 제 2차 세계대전의 치열했던 전투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도, 우리 광복의 역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사이판은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 되어 고된 노동을 했던 슬픈 사연의 섬이기도 하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사이판은 일본과 미국 모두에게 전략적 요충지였다. 일본에서 불과 약 2,300km 거리에 놓여 있어 당시 사이판을 점령한다면 미국의 신형 폭격기가 거뜬히 일본까지 날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이판은 양국 간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 되었다.

 

1944년 6월말 패배를 예감한 일본은 사이판의 일본인들에게 자살을 권고하는 일왕의 칙령을 내린다. 이 명령에 약 1,000여명의 일본인은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높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선택했다. 그 후로 이곳은 오늘날 사이판에서 ‘자살 절벽’과 ‘만세 절벽’으로 불리게 된다.

 

지금의 풍경은 그저 푸르고 평화롭기만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섬뜩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더불어 섬 곳곳에 전쟁 당시 사용했던 전차, 벙커, 포탄 등이 녹이 슨 채로 그대로 남아있어 전쟁의 참혹함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지난 휴가 여행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곳은 티니안 섬이었다. 사이판 본섬에서도 경비행기로 10분간 더 들어가야 하는 티니안은 인구가 약 2,000여명에 차로 1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작고 조용한 섬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티니안은 제 2차 세계대전을 끝낸 무시무시한 섬이다. 미국의 사이판 점령 이후 일본에 투하시킨 2개의 원자폭탄을 조립 및 보관하고, 그 원자폭탄을 탑재한 B-29 비행기가 이륙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섬 곳곳에서 당시 전쟁에 사용했던 통신 탑, 관제탑, 활주로 등을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원자폭탄 보관소를 찾아가 보았다. 단지 조금 깊게 파여 있는 구덩이에 자그마한 온실을 얹어 둔 것 같은 보관소 안에는 당시 원자폭탄을 조립하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매 사진마다 ‘TOP SECRET’라는 글씨가 찍혀있었다.

 

그제야 과거의 전쟁이 피부로 느껴지며 전쟁의 참혹함과 피해자들, 이 원자폭탄 이후의 역사들, 아직까지도 핵폭탄으로 서로를 위협하는 지금의 세계에 대한 생각들로 머리가 엉켜서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방수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