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9. 11. 14. 06:00

 

길이 곧 여행이었던 2주간의 노르웨이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풍경을 꼽아보라면 열손가락도 부족하다. 하지만 가장 여운이 남는 풍경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이 있다. 노르웨이 남부 천 미터 고지에 끝도 없이 펼쳐져있던 하르당에르비다(Hardangervidda), 하르당에르 고원이다.

 

수목한계선보다 높이 위치한 이 인적 없는 고원의 풍경은 일견 단조롭다. 그저 이끼와 풀들이 낮게 자라난 완만한 구릉과 그 사이에 자리한 호수들의 모습이 한참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이 풍경을 바라본다면 당장 차를 세우고,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그 황량한 땅을 마구 쏘다니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지난 7월 노르웨이 여행을 함께 했던 우리 일행들도 하르당에르 고원지대를 드라이빙 하다 적당한 곳에 버스를 세우고는 그저 걸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가서 무얼 해야 할지는 몰라도 일단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쾌청한 날씨에 내리쬐는 햇볕이 얼굴을 따갑게 해도 그저 멀리 더 멀리 걷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홀로 남게 되었다. 폭신한 이끼를 밟으며 되는대로 걸음을 옮기다보니 사방에는 아무도 없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멀리 스치는 바람소리뿐. 그 적막감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앉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왜 이 쓸쓸한 고원이 그토록 내 마음을 끌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크고 작은 물웅덩이마다 고여 있는 푸른 하늘, 머리 위 뭉게구름이 내려앉은듯한 하얀 북극 황새풀. 그 보드라운 솜털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 그 아름다움을 도대체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답을 알지 못한 채 돌아서려니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게 노르웨이의 아름다움은 그 어느 절경보다도 이 하르당에르 고원의 모습으로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내년 여름, 노르웨이로 떠나신다면 꼭 하르당에르 고원에서 나와 같은 풍경을 마주하시기를. 그리고 그 풍경에 꼭 맞는 단어를 찾으신다면 부디 제게도 알려주시길…. [신한지]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