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9. 8. 19. 06:30

 

 

다소 딱딱한 ‘독일 역사 도시’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독일이라는 나라가 여행지로서 매력이 없기 때문일까, 아님 건조하고 빡빡해 보이는 일정 때문일까? 기대보다 단출한 인원에 물음표를 품고 출발했지만 여행 내내 마치 학술연구단처럼 초집중하여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12일이었다.

 

공무원 연수를 테마세이투어의 독일역사도시 12일의 일정으로 진행한다면 나의 세금이 아깝지 않으리라.

 

 

 

북독일여행의 시작은 베를린이었다. 한낮의 기온이 35도를 찍는 예상치 못한 더위가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우리의 열정은 더 뜨거웠다. 1·2차 세계대전의 흔적, 유적을 통째로 뜯어온 박물관, 놀라운 컬렉션을 자랑하는 국립회화관, 유대인 추모와 그 이면, 감자가 놓여있던 소박한 대왕의 묘, 포츠담 선언의 현장,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훔볼트 대학과 현대판 분서갱유 사건이 벌어졌던 베벨광장 등 독일의 드러난 겉모습을 살펴보는 시간들이었다.

 

독일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수많은 의문을 남긴 채 베를린을 뒤로 하고, 선선한 날씨와 함께 여행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한 혁명가의 깊은 고뇌의 시간을 엿볼 수 있었던 루터 하우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고딕축제를 맞아 그로테스크한 고딕 복장을 한 사람들을 함께 만났던 라이프치히, 예상치 못한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했던 전투 기념비, 마이센의 도자기 공방 등 식사할 시간까지 쪼개가며 숨 가쁜 일정이 이어지다가 드레스덴을 만났다.

 

단체여행객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한적한 소도시들을 여행하다가 수많은 관광객을 만난 유일한 곳이다. 아름다운 야경의 구시가지와 오페라 감상, 일정 중 유일무이하게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디어 독일 정신의 원류를 만나는 날이 왔다. 괴테와 실러 등 우주의 별만큼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활동했던 바이마르, 아름다운 실내 장식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그야말로 사회 변화의 저력이 느껴지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이제나흐의 바르트성.

 

 

 

바르트성은 화려한 다른 유럽의 궁과는 다른 묵직한 감동이 있었다. 독일인의 정신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선입견일수도 있지만, 독일인하면 떠오르는 무뚝뚝하고 차분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내성적이고 철학적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그런 복잡다단한 사람의 처음이 여기서 부터였을 것 같은 깨달음을 준 곳이다.

 

비텐베르크, 라이프치히, 마이센, 드레스덴, 아이제나흐, 크베들린부르크, 슈베린까지 구동독시절 숨죽이고 있었던 소박하지만 탄탄한 내면의 도시들을 둘러보는 것 또한 이번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여행의 후반부를 장식한 한자동맹시절의 부유함이 한눈에 느껴지던 브레멘, 뤼벡, 함부르크까지….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좀 더 머무르면서 찬찬히 여운을 느껴보고 싶은 도시들이었다.

 

눈부신 인문학을 꽃피운 민족, 수백 년이 넘는 목조가옥을 보존하고 전통을 지켜나가는 민족, 그러나 2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민족, 이해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민족, 아직도 의문은 많이 남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사연 많고 내성적인 독일이라는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본 것 같은 기분이다.

 

독일은 워낙 내용이 알차기 때문에 화려한 포장이 따로 필요 없다. 그 충실한 내면을 좀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줬으면 좋겠다.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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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