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9. 9. 2. 06:30

 

 

여행에서 시기는 너무나 중요하다. 이 중 너무 덥거나 춥거나, 혹은 축제가 열려 너무 혼잡할 때는 1차적인 기피대상이다. 하지만 올해 그 금기들을 무시한 여행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을 주 무대로 한 라벤더로드&오랑주 일정이다.

 

출발일은 유럽에서 가장 더운 여름인 7월 1일. 이때 굳이 간 이유는 라벤더가 피고,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이 동시에 열리는 때를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프로방스의 여름은 더울 거다. 그것도 무진장.’ 이라는 직원들의 친절한 예언(?)이 있었기에 미리 각오는 했건만 올 유럽의 여름은 상상을 넘는 이상 고온이었다.

 

 

하지만 나름 심적 여유는 있었다. 이미 몇 차례 남프랑스 인솔을 다녀온지라 여행이 어떤 그림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방문 도시는 몇 군데 같더라도 이건 전혀 다른 여행이었다.

 

가령 남프랑스 일정에서 마르세유가 풍경 위주였다면 이번 마르세유는 문화와 예술이 테마였다. 지역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 같았던 르 파니에는 골목 벽을 꽉 채운 그라피티들과 공방과 카페들이 어우러져 가장 마르세유다운, 거칠고 꾸미지 않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독특한 외관의 박물관인 뮤셈(MuCem)에선 기존의 마르세유가 가지고 있던 ‘위험한 도시’라는 이미지에서 유럽 문화 수도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노력이 보였다.

 

거기에 교황청 방문으로 묵직하고 엄숙했던 아비뇽이 이번에는 우연히 7월의 종합 예술 축제와 겹쳐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도시로 각인되었다. 기존에 초록색만으로 가득했던 프로방스의 도로는 보라색의 라벤더, 노란색의 해바라기, 누런색의 밀밭 등 알록달록한 색의 팔레트 같았다. 매해 전시가 바뀌는 빛의 채석장에서는 샤갈, 보쉬-브뤼겔전 이후로 그토록 보고 싶던 ‘고흐전’까지 관람했다.

 

어떻게 보면 이 시기의 강렬한 햇살과 더위도 프로방스의 진면목을 느끼게 한 요소였다. 더운 만큼 더 여유롭게 진행하고자 했고, 그렇기에 정말 프로방스에서 휴식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던 오랑주의 오페라 페스티벌 무대까지…. 고대 극장 안에 들어 찬 많은 사람들 탓에 더 더웠지만 이따금씩 불어오는 미풍과 환상적인 무대, 그리고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이 너무나도 낭만적이었다.

 

물론 이 일정에 난관도 많았다. 견딜 수 없이 더운 순간들도 있었고, 축제 현장과 파리 일정에서의 인파들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 주는 즐거움은 예상외로 무척 컸다. 그건 마치 같은 장소라도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이 찍히는 사진과도 같았다. [방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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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