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20. 1. 15. 06:00

 

중국 문화가 태동하고 완성된 곳, 중국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산서성 여행을 다녀왔다. 총 20명과 함께 한 이번 여행은 출발 전부터 기대만큼 걱정도 많았다. 여행 일정 대부분이 역사적인 장소였고 오래된 건축물들을 위주로 답사하는 것이었기에 행여라도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번여행의 방문지 하나하나가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었고 나름의 역사적 의미가 함축된 장소들이어서 내내 흥미로웠다.

 

 

 

첫 방문지인 운강석굴부터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돈황 막고굴, 낙양 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로 불리는 운강석굴에 모셔진 부처님들은 마치 1,500년의 세월 동안 우리를 기다린 듯 자애로운 미소로 맞아 주었다. 그리고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건축된 현공사는 당장이라도 무림의 고수가 경공술을 펼치며 날아 내릴 것만 같은 신비함을 전해주었다. 절벽을 타고 올라간 현공사 안에는 무림고수 대신 공자, 부처님, 노자가 나란히 앉아 유불선의 합치를 보여주고 있어 더욱 감동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일정에서 내게 가장 강한 느낌을 준 것은 응현목탑이었다. 1,000년 전, 북방 오랑캐라고만 알고 있던 거란족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요나라를 세우고 건립한 목탑이다. 우리나라의 황룡사 9층목탑이 현존한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참으로 웅장하고 당당했으며 기품이 있는 탑이었다. 교과서에 짧게 언급된 거란족은 이렇듯 응현목탑을 통해 그들이 한 때 이 지역의 주인이었음을 항변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방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인 한족이 치열하게 맞닥트렸던 최고의 요충지 안문관에 세워진 만리장성을 답사하고,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는 중국 최대의 사당 진사도 방문했다. 눈에 보이는 건축물마다 기본이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산서성이 중국 문화의 원류이자 핵심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산서성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평요고성에서 맞이했다. 평요고성은 급속한 중국현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용케 옛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내고 있었다. 잠시나마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 상인들이 묵던 숙소였던 평요회관에서 묵은 하룻밤도 참 좋았다.

 

면산은 명불허전, 정말 경이롭고 멋진 곳이었다. 산허리를 잘라 절벽에 지어진 운봉사, 정과사, 개공사, 대라궁 등 수많은 사원들을 하나씩 답사해 나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거기에 한식(寒食)의 유래가 된 충신 개자추의 가슴 아픈 사연이 더해져 면산은 더욱 의미 있는 장소로 기억되어졌다.

 

이번 여행에는 두 개의 거대한 저택 방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거상(巨商)이었던 왕씨 집안의 대저택 왕가대원과 강희제를 도와 청나라의 문물제도를 정비한 대학자 진정경의 대저택인 황성상부가 그것이다.

 

 

 

두 저택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와 정교한 조각들, 그리고 오래된 건축물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러면서도 상인의 저택과 학자의 저택이 갖는 미묘한 차이가 흥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해서 무척 즐거웠다.

 

역사, 문화, 건축 등이 핵심인 이 여행에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연관광이 조금 약하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여행 말미에 방문한 황하호구 폭포는 이런 아쉬움을 일거에 해소해 주었다. 누런 황하의 황톳물이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황하호구폭포는 중국 제일 폭포라는 황과수 폭포를 능가하는 웅장함으로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미뤄뒀던 숙제를 해결한 것처럼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 중국 문화의 원류 지역을 드디어 답사했다는 만족감이었다. 앞으로 산서성 여행은 혹한기와 혹서기를 제외하고는 매달 진행될 예정이다. 잔잔하게 가슴 속에 스며드는 감동과 여운이 있는 여행지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